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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류가 단계적으로 진화했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단계적으로 진화한 것이 아닙니다. 한 때 인류는 여러 종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호모 사피엔스만 유일하게 생존에 성공한 것이고요. 그 이유가 뭘까요? 

 

우리는 흔히 농업 혁명을 통해 잉여 생산물이 생기고 이를 통해 인류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농업 혁명은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정착과 농사의 시작은 사실 혁명이 아니라 일종의 사기 였습니다. 

 

흔히 우리는 평등과 자유, 인권을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유주의나 자본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는 종교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이데올로기와 생각은 결국 모두 다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허구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차별이 거의 사라졌다고 이야기 합니다. 노예제가 없어졌고, 인종 차별도 과거와 같이 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의 차별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생명공학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부자와 빈자 간 진정한 생물학적, 물리적 차별을 가져올 것을 예상하지 못합니다.

 

이것들이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우리가 인류의 역사에 대해 가장 흔하게 착각하는 네 가지 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를 통해 인류의 진짜 역사를 파헤쳐 나갑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 지도 이야기 합니다. 지금부터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인류의 진정한 역사를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인지혁명

인류는 극히 최근까지 먹이사슬의 중간에 위치한 생물종이었습니다. 우리 인류가 먹이사슬의 정점으로 뛰어 오른 것은 불과 10만년 전 쯤,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면서 부터입니다. 이 새로운 인류종은 같이 살고 있던 다른 인류 종들을 멸종시켰고, 심지어 자기들 보다 더 강한 포식자들을 사냥했습니다. 그리고는 생태계의 정점에 등극했죠.

 

어떻게 사피엔스는 자신보다 더 강하고 똑똑한 네안데르탈인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그 원인은 바로 '언어' 였습니다.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하면 단순히 언어가 아니라 뒷담화과 거짓말 이었습니다.

 

동물이 무리를 지으려면 서로 믿고 협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을 표현하는 수단은 기본적으로는 스킨십입니다. 사자, 늑대 같은 포유 동물은 특히 더 그런 모습을 보입니다. 침팬지도 서로 어루만지며 협력의 의사를 표현합니다. 그러나 협력의 대상이 수십명이 넘어간다면 일일히 모두 어루만지기 힘들어집니다. 결국 서로를 믿지 못하게되고 다툼이 생기며 무리가 쪼개어집니다.

 

그러나 어너의 발전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특히 뒷담화를 통해서 우리는 스킨십 하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정보까지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누굴 믿고, 누굴 덜 믿어야 하는지 알게 된 거죠. 이런 뒷담화는 무리의 규모를 몇 배 더 크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는 마침내 가장 중요한 발명품을 만들어 냅니다. 바로 거짓말이죠. 무리가 수백에 이르면 구성원들은 서로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기도 힘들어집니다. 이 때 부터 이 무리를 하나로 묶을 것이 필요해 집니다. 그것은 무리 공통의 신화와 전설, 이야기 입니다.

 

허구를 바탕으로 무리는 집단 공통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서로를 신뢰하고 믿게 됩니다. 이 거짓말이 모을 수 있는 무리의 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수십억명이라고 할지라도 공통된 하나의 허구 아래 모일 수 있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수 많은 동물종들 중에 오로지 호모사피엔스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에 대해 말하고 믿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허구 아래에 모인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킬 수 있었고 다른 포식 동물들도 상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냐 하면 그들에게는 뒷담화도 허구도 없었기 때문이죠. 기껏해야 수십명씩 무리 지어다니는 상대방에게 수백, 수천명으로 이루어진 군대가 밀어 닥치는 상상을 해 보십시오.

 

이 허구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화와 전설이라는 이름의 허구는 이제 조금 더 세련된 형태의 종교와 법, 이데올로기 같은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위인의 얼굴이 그려진 종이 쪼가리를 가치있다고 믿는 것, 아무것도 없는 맨 땅위에 국경이 있다고 생각 하는 것, 인간에게 자유와 인권을 당연한 권리라고 여기는 것 모두 현대 사회에 등장한 신화와 전설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신화와 전설은 지구에 사는 수십억 인구를 질서있게 통제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2. 농업 혁명

호모 사피엔스는 등장한 이후 줄곧 수렵 채집 생활을 하다가 대략 1만년 전 부터 농사를 지으며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일대 전환은 인류의 문명 발전을 놀랍도록 촉진시켰습니다. 농업혁명으로 인해 식량의 총량이 확대되었고, 잉여 생산물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농업혁명은 인구를 폭발시켰고 방만한 엘리트들을 만들어 냅니다. 잉여 생산물이 많아질 수록 인류는 자식을 더 많이 낳았고, 이런 잉여 생산물의 대부분은 일하지 않는 소수의 엘리트 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인류 개개인에게도 농업 혁명은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수렵채집을 하던 시절의 인류는 고작해야 하루 4시간 정도만 일하면 됐는데 반해 농부는 해가 떠 있는 동안 내내 일을 해야 했습니다. 수렵 채집을 통해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하던 때에 비해 농부는 단일 작물만 먹게 되었고, 고된 노동으로 인해 점점 더 약해져 갔습니다. 

 

농업 혁명은 혁명이 아니라 사기에 가까웠습니다. 엘리트만 편해졌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많이 일하고 더 약해 졋습니다. 농부들에게서 빼앗은 잉여 생산은 엘리트 들이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왕궁, 성채, 기념비를 세우고 역사책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역사는 진짜 인류의 역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엘리트 들의 역사에 불과 합니다.

 

농업 혁명 뿐만이 아닙니다. 문명의 발달은 대체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했습니다.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게 됩니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의존하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편지와 카카오톡을 생각해 볼까요? 예전에는 편지를 많이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중을 기해 천천히 쓸 수도 있엇죠.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빨리 카톡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은 즉각적인 대답을 원하고 신중하게 고민을 하며 카톡을 보낼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카톡이 생겨서 우리는 더 바빠졌습니다.

 

미디어의 발달로 이제 우리는 외모를 비교할 때 내 주변에 있는 친구 몇 명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미남미녀와 비교해야만 합니다. 열등감과 콤플렉스가 개인을 짓누릅니다.

 

머지않은 근미래에 생명 공학의 발달은 이제 죽음조차 부에 따라 불평등하게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인류의 내일은 을 불행했습니다. 과학과 기술은 발달했지만 개인의 행복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대로 된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유발 하라리는 말 합니다.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한느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필연적인 것이 아님을 알기 위해서다.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3. 인류의 통합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아군과 적군을 구분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우리'와 '그들'을 구분 해야 하죠. 나와 비슷하게 생기고 내 바로 주위에 있는 집단은 '우리' 였으며, 그 외 다른 것들은 '그들' 이었습니다. 

 

신화와 전설은 사람들은 하나의 부족, 국가를 만들며 협력할 수 있었지만 골짜기를 하나 넘어간 다른 부족은 같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신화와 전설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낯설고 위협적인 존재 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곧바로 또 다른 세 가지 상상의 산물을 통해 골짜기와 강으로 나뉘어진 다른 부족의 사람들과도 '우리'라는 연대 의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세가지는 돈, 제국, 종교입니다.

 

돈은 강력한 힘을 가진 것입니다. 서로의 신앙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 조차 돈을 믿습니다. 돈 덕분에 서로 믿지도 않고 심지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협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돈은 사람이 가장 쉽게 믿는 상상의 가치 입니다.  한 국가에서 사용하는 화폐는 주변의 다른 국가에서도 가치를 인정 받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사람들이 믿는 가상의 질서인 화폐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그것은 금이었고, 지금은 달러입니다. 사실은 종이조각에 불과한 달러를 전 세계 사람들은 가치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음은 제국입니다.

 

인간의 정복욕은 한계를 모르고, 역사에 등장했던 제국들은 저마다의 명분으로 주변국을 침략했습니다. 제국은 정복한 국가들의 관리를 위해 언어와 법, 화폐를 표준화 시켰습니다. 그렇게 '그들' 이었던 존재들은 점차 '우리'가 되어갔습니다.

 

이것은 현대에서조차 마찬가지 입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제 국경을 초월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국가오 지구 전체게 영향을 기치는 결정들이 이제는 기업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종교입니다.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의 종교는 제국의 통치수단으로 제국의 힘을 강화 시키기도 했고, 공통된 신앙을 제공하며 사람들을 하나로 합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 하는 종교는 그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지난 수백년 간 종교의 힘은 점점 약해져 갔습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그 위상을 잃었죠. 반면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종교는 또 다른 것입니다. 바로 자유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등과 같은 이념이 그것입니다. 이런 이데올로기도 종교와 비슷하게 절대 불변의 진리가 있다고 믿게 만들고, 성서와 비슷한 이론서가 있고, 기념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현대 역사는 이데올로기의 역사였고, 그 승자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되었습니다. 그 새로운 종교 아래 사람들은 공통의 질서를 믿으며 협력하고 있습니다.

 

4. 자본주의

 

현대인들이 가장 크게 믿고 있는 종교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자본주의일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핵심 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본가가 수익을 내면, 그 돈으로 직원을 더 고용해서 이윤을 늘린다. 이윤이 많아지면 자본가는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할 수 있다. 따라서 민간 기업인의 수익 증대는 공동체의 부와 번영을 늘리는 기초가 된다. 개인의 수익을 늘리려는 이기적인 인간의 욕구가 공동체 전체의 이득을 늘린다.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부를 크게 증가시켜 주었고, 과학과 문명의 발전을 도왔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성공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부자가 자신의 수익을 비생산적으로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이윤이 생산에 재투자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장은 그 자체만으로는 사기, 도둑질, 폭력 등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속임수를 제재하고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만약 정치가가 돈에 의해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며 자신의 배만 채우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자본가와 정치인등을 비롯한 엘리트들만 부유해지고 대다수 노동자의 삶은 더욱 힘들어 질 것입니다. 이럴 때 자본주의가 실패하게 되는 것이죠.

 

모든 상상의 질서는 스스로 허구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믿음이 마치 자연적인 현상인 듯 주장합니다. 노예는 복종하는 본성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인종 간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고 이야기 하거나, 부자와 빈자를 가르는 것은 노력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차별의 악순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당한 차별은 시간이 흐르면서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심해지기 쉽습니다. 돈은 부자에게, 교육은 다시 교육받은 엘리트 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차별을 정당화 하는 사람들은 결과를 원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를 고치지 못하면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여기서 다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만약 정말 사람들의 차이가 생물학적인 것이라면 인간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 생물학만 배우면 됩낟. 그러나 인간 각각의 생물학적 차이는 무시할만 한 수준에 불과합니다. 생물학 만으로는 인도 사회의 문제점이나 미국의 인종차별의 역사를 다 설명할 수없을 겁니다.

 

우리가 만들어 낸 상상의 질서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지금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이 책의 끝 부분에서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이제 부자와 빈자는 생물학적으로 차별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부자들은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고, 머리에 칩을 심을 수도 있습니다.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고, 더 똑독해 질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돈에 따라서 사람의 생물학적 능력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명마저 부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발 하라리가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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