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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도입부에서 센델교수는 2019년에 있었던 미국 부유층 자녀들의 대학 부정 입학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시험감독관에게 돈을 찔러줘서 sat 성적을 조작하고 운동부 감독 들에게 뇌물을 줘서 해당운동을 해본적도 없는 학생들이 체육특기생 으로 명문대에 진학하는 일들이 미국에서 벌어져서 2년전에 사회적인 문제가 된 적이 있었죠.
이 사건은 많은 미국인 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는데 그 분노의 기저에는 누구나 공평한 기회를 제공받아서 열심히 노력하고 능력 에 따라서 공정하게 대가를 누려 야 한다는 미국의 능력주의 신화 가 있었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이런 능력주의를 신봉하지만 샌 델교수는 이런 믿음에 대한 의문 을 제기합니다.
과연 능력주의가 무조건 옳은 것일까. 설령 대학입시 가 완벽하게 공정해져서 학생들이 빈부격차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능력에 따라서 대학을 선택할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경쟁과정은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굴욕감을 선사할것이다. 비단 대학 입시뿐만 아니라 미국사회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이런 능력주의 신화는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많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굴욕과 모욕감을 선사했습니다.
수십년간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생산시설 을 저임금 국가로 아웃소싱해서 물가를 저렴하게 낮췄지만 그 과정에서 일자리가 사라진 미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 을 받았죠. 자유시장경제와 세계화의 혜택은 명문대를 나온 일부 상류층 에게만 돌아갔고 학위를 갖지못한 대다수 노동자 계급의 수입은 오히려 더 나빠졌습니다.
하지만 능력주의는 이런 양극화를 정당화 시켰죠 내가 가난한건 재능이 부족하고 게을렀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사회 는 패자들에게 경제적 불평등 뿐만 아니라 이런 심리적인 굴욕감을 선사했기 때문에 수십년간 쌓여 왔던 대중의 분노가 영국에서는 브렉시트로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표출되었습니다.
샌델교수는 이런 포퓰리즘적 분노 에 대처하기 위해서 사회적 연대 와 공동선 그리고 겸손함을 강조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그 성공 이 오로지 본인들의 재능과 노력 덕분이 아니라 어느정도의 행운 이 작용했음을 아는 겸손함. 그리고 실패한 사람들은 단지 게으르고 노력이 부족했던것이 아니라 통제 할수 없었던 불운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배려하고 도와줘야 된다는 사회적인 연대감이 필요하다.
뭐 이상이 이 공정하다는 착각을 정말 간단하게 요약해본건데 이 책에는 제가 동의할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먼저 제가 동의 했던 부분은 성공에는 행운이 필요 하고 우리의 운명은 통제할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노력을 한다고 해도 실패할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능력주의 사회는 성공한 사람들에게 확실히 오만함을 안겨줬죠. 뭐 잠깐만 뉴스 를 봐도 오만한 상류층의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죠 그리고 세계적으로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고 현재 경제 시스템은 지속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여기까지는 모두 제가 동의했던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외 내용에서는 제가 동의 할수 없는 부분이 많 았습니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 서 제가 느꼈던건 샌델교수님의 모든 주장의 기저에는 무의식적인 두개의 전제가 깔려있다는 점이 었어요. 첫째 인간은 선하고 정직 하다. 둘째 미국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책의 중반부에서 샌델교수님은 능력주의 사회와 귀족정을 비교 하면서 어떤 사회가 더 공정한지 이야기 합니다. 한 사회는 귀족정이며 소득과 재산 은 어떤 집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달려 있고 고스란히 되물림 된다고 가정 하자. 귀족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은 부유하며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면 가난을 면치 못한다. 그들의 자녀도 자녀의 자녀도 똑같은 운명 이다.
그리고 다른 한 사회는 능력 주의 사회다. 재산과 소득의 불평등 은 세습특권에 따른 것이 아니고 각자가 노력과 재능에 따라 얻은 결과물이다. 그리고 두나라의 불평등 정도는 똑같이 매우 높다.
당신이 가난한 사람이라면 둘중 어느 사회에서 살고 싶겠는가 당연히 대부분 사람들은 가난하다 면 능력주의 사회에 살고 싶겠죠 하지만 샌델교수의 생각은 좀 다릅니다. 만일 봉건사회에서 농노로 태어났다 면 힘들게 살아야 하겠지만 그런 낮은 지위가 스스로의 책임이라는 부담은 지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죽도록 일해서 받들어야 할 지주가 자신보다 더 유능하고 탁월해서 그 지위를 얻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가 자신보다 뛰어나 서가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았을 뿐 이라고 볼 것이다. 그 부모의 부와 영향력으로 저절로 상류층까지 올라가는 사람은 스스로 확신에 차서 나는 이일에 최적격 인 사람이야 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그 자리를 공개경쟁 으로 따낸 게 아님을 알고 있고 그가 만일 정직하다면 자신의 하급자 가운데 그와 동등하거나 그 보다 더 나은 사람이 여럿임을 알수 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샌델교수님은 대부분 인간이 정직 하고 선하다는 전제 아래 이런 논리 를 펼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조선 시대만 보더라도 양반들이 본인들을 노비보다 단지 운이 좋았 을 뿐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전혀 아니죠. 정말 일부 일부의 양반들은 노비를 관찰하면서 아 나보다 뛰어난 점이 있구나 뭐 이런 생각을 했을 수는 있겠죠. 정말 극히 일부는 하지만 대부분 양반들은 노비를 인간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때문에 대부분 양반들은 본인들이 태어 날 때 부터 우월한 선천적인 권리가 있기 때문에 노비들을 지배하는 게 당연하다고 철썩같이 믿었습니다.
노비들도 마찬가지죠. 신분제 사회에서 노비들이 자신과 양반의 처지를 비교하면서 저 양반은 운이 좋았 을뿐이다. 나는 노비지만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뭐 이런생각을 했을까요 아니죠. 대부분은 그냥 현실에 순응할뿐이고 일부는 신분 제에 대한 그런 분노의 감정은 있어도 자부심을 느끼지는 않았을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비단 조선시대 뿐만 아니라 서양의 신분제 사회 도 마찬가지 였죠. 역사를 통틀어 신분제 사회에서 그나마 하층민 이 자부심을 가질수 있었던 적은 전쟁이나 흑사병 같은 비상사태 때문에 신분제가 약화되고 어쩔수 없이 능력주의가 도입될 때 뿐이 었습니다.
선한 인간본성에 대한 샌델 교수님의 신뢰는 이책의 여러 군데에서 관찰되는데 예를 들어 대학입시에서 능력주의를 약화 시키기 위해서 1차로 3만명 정도의 뛰어난 학생을 뽑은 다음 제비뽑기 로 대학에 보내자 뭐 이런주장도 있었어요. 저는 이런 선발과정이 sat 점수로 줄세우기 보다 훨씬더 많은 불법과 편법이 자행될기 쉬 울것 같은데 아마도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신뢰가 저한테는 없기 때문 이겠죠.
물론 저는 수능점수 로 줄세우는게 무조건 공정하거나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불법이나 편법이 자행될 가능성이 가장 낮은건 팩트죠.
그리고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이책에서 샌델교수님은 미국이 망할수도 있다 미국의 국가 경쟁력이 다른 나라보다 떨어질 수도 있다. 뭐 이런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아요. 그런 개념 자체가 없는데 한국인 으로서는 참 신선했습니다. 양극화 해소와 사회통합이 필요한것도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고 정의로운 것이기 때문이지 국가 경쟁력 때문 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정도 의 비효율은 미국이 충분히 감당 할수 있다는 전제 아래 사회적 연대 와 공동선 그리고 정치적에서 도덕성 에 대한 여러가지 주장을 펼치죠.
그리고 그 전제는 맞습니다. 당분간 아마도 샌델교수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미국이 망할일은 절대 없겠죠. 하지만 핵무기를 가진 독재 국가와 휴전중이고 세계 2,3위의 군사대국 그리고 세계 2, 3위의 경제대국에 둘러쌓여 있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저는 우리나라가 언제든지 망할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생존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국가의 생존 그리고 제 자신의 생존 까지 미국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최연소 교수가 된 사람은 절대로 가질수 없는 종류의 두려움이죠. 그래서 샌델교수님은 인간의 선한 본성 에 대한 믿음 그리고 자국의 경제력 과 군사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좀더 공정하고 도덕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치를 논하고 있지만 저는 이책을 읽으면서 샌 델교수님과 모든면에서 정확하게 반대가 되는 정치철학자가 한명 떠올랐습니다.
바로 마키아벨리예요. 마키아벨리는 중세 약소국이었던 피렌체 공화국에서 태어났죠. 부유한 집안이 아니라서 대학을 다니지는 못했지만 그 능력을 인정받아서 젊은나이에 피렌체 공화국 제2 서기국 서기관으로 발탁됩니다. 당시 피렌체는 프랑스나 스페인 같은 강대국들은 물론이고 밀라노 공국이나 나폴리 왕국같은 이탈리아 소국들과 비교해도 약소국이었 기 때문에 피렌체공화국의 외교 적 정치적 실무를 담당했던 마키아 벨리는 15년간의 공직 생활동안 정말 많은 고생을 하죠.
그리고 결국에는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공직에서 추방되고 감옥에 갇히기 까지 합니다. 그런 실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은 인간은 악하고 국가는 언제든지 망할수 있다는 전제 조건을 깔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 정치철학의 핵심은 도덕과 정치는 반드시 분리해야 된다는건데 정치 에서도 도덕성을 강조하는 샌델교수님 의 견해와는 완전히 반대죠.
저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 이 훨씬 더 수긍이 가더라구요. 아마도 당시 피렌체 공화국 만큼이나 불안정한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 이겠죠.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인과 한국인의 기본적인 관점 차이가 느껴져 서 재밌었습니다. 예를 들어 샌 델교수님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너무 경제적 과학적으로만 접근하는 모습을 가르키며 기술관료적인 모습 테크노 크라시라고 비판 하는데 한국에 살고 있는 저는 최소한의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서 정책결정을 하는 그런 기술관료적인 지도자가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샌델교수님은 민주시민의 덕성을 기르기 위해서 공적토의, 도덕교육, 공동선, 겸손 함 뭐 이런 것들을 많이 강조하셨 지만 저는 주택 공급을 줄이면 가격이 올라간다는 기본적인 경제학을 아는것이 더 올바른 투표를 할 수 있는 민주시민의 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샌델교수님이 비판했던 오바마 전대통령 같은 기술관료적인 관점 이죠.
그리고 상류층이 겸손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도덕이나 윤리 교육 보다는 스마트폰에 달려있는 카메라와 sns가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두려움 이 있어야 겸손함이 생기는거죠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샌델교수님 의 이전 두책과는 다르게 이번 책은 약간은 무리한 논리전개가 많다 고 느꼈는데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두되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 양극화 승자의 오만 패자의 굴욕감 뭐 이런 부분들은 충분히 수긍할만 했고 또 책을 읽으면서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다각도로 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는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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