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경제경영

바세린의 역사

스노브 2022. 1. 20. 06:16
반응형

피부 보습을 위해 사용하는 여러가지 보습제 중에 가장 짱짱한 성능을 자랑하는 전통의 강호가 있습니다. 바로 바세린이죠. 바세린은 입술부타 발바닥 까지 거의 전신에 사용 가능한 강력한 보습제인데요. 이 바세린이 처음 등장한 것은 무려 150여년 전이라고 합니다. 바세린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세린의 탄생

바세린을 발명한 화학자 로버트 아우구스투스 체스브로는 1837년 1월 9일 영국 런던에서 출생했습니다. 로버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뉴욕대학교에서 화학과를 전공하여 화학자가 되었습니다.

 

이 때는 아직 석유 유전이 개발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등불을 밝히기 위해 향유고래 기름을 정제해서 사용했는데 대학을 졸업한 로버트는 이 향유 고래 기름을 정제하는 곳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향유고래의 기름을 연료로 사용하기에 적합하게 정제하는 작업이 주된 업무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1859년 8월 29일 미국의 사업가 에드윈 드레이크가 석유 유전을 발견했습니다. 이후 석유 산업은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석유 산업의 발전은 고래로부터 기름을 추출하던 로버트의 직업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더이상 고래기름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니까요.

 

로버트 역시 시대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석유 기름을 연구하러 곧장 펜실베니아로 향했습니다. 당시 펜실베니아는 수 많은 유전이 터지며 오일 러시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석유 대박의 꿈을 안고 모여드는 장소였습니다.

 

펜실베니아에 도착한 로버트는 석유 시추 현장에서 인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그러다 석유와 같이 올라오던 끈적끈적하고 까만 어떤 물질 때문에 시추 기계가 오작동해서 인부들이 작업을 멈추고 그 물질을 제거해야 하는 상황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말썽을 일으킨 까만 이 물질은 로드 왁스라는 석유 찌꺼기였습니다.

 

그런데 인부들은 로드 왁스를 모아두었다가 상처가 나거나 화상을 입었을 때 치료제로 바르고 있었으며 실제로 회복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화학자였던 로버트는 분명 로드 왁스에 치료와 관련된 화학성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까만 로드 왁스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직 향유고래기름 정제사였던 로버트는 로드 왁스에서도 여러 가지 물질을 정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무려 5년의 시간 동안 열심히 연구하고 또 연구했습니다. 그러다 1865년 로버트는 로드 왁스에서 좀 더 가벼운 석유 오일을 증류하면 페트롤리움 젤리라고 부르는 밝은 색 젤이 남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밝은 색 젤을 완전히 분리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5년의 시간을 더 연구하며 추출 기술을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1870년 마침내 로버트는 밝은 색 젤을 완전히 추출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는 독일어로 물을 의미하는 'wasser'과 그리스어로 기름을 의미하는 'elaion'을 조합하여 이 밝은색 젤에 vaseline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당시는 물에서 탄소와 수소간의 화학 작용이 발생해서 석유가 만들어졌을 거라는 석유 생성 이론이 지배적이었고 로버트 역시 그렇게 믿고 있었기에 밝은 색 젤을 '물-기름'이란 의미의 바세린으로 이름 지은 것입니다.

바세린 성공기

로버트는 마차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바세린을 화상이나 상처 치료제로 홍보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대부분의 약사들은 로버트의 바세린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로버트는 분명 사람들이 바세린을 써본다면 그 효과를 알게 될 것이라 확신하고, 샘플을 무료로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버트는 바세린을 팔기 위해 아주 엽기적인 방법까지 동원했습니다. 바세린의 효능을 입증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보는 자리에서 자신의 피부에 고의로 화상을 입거나 상처를 내고, 상처 난 부위에 바세린을 바르는 방식으로 마케팅을 한 것입니다.

 

이제는 모두가 알다시피 바세린이 상처를 직접적으로 치료하는 효능은 없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상처 부위를 통한 감염으로 인해 악화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바세린은 상처부위와 외부를 차단함으로서 감염을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도 바세린을 바르고 나면 상처는 더 심해지지 않고 회복되었기 때문에 의사들 역시 바세린이 치료 효능이 있다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어쨌든 상처 부위에 바세린을 바르는 것은 회복에 도움을 주었고 피부의 보습효과까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바세린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로버트는 미국 전역에 바세린을 팔기 시작합니다.

 

바세린의 인기는 날로 치솟아 1874년에는 1분에 1개씩 팔릴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이윽고 세계 시장에 진출하게 되었고 특히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바세린을 좋아해서 매일매일 발랐다고 전해지는데 이로 인해 로버트는 빅토리아 여왕에게 기사 작위까지 받았습니다.

 

로버트와 바세린에 대한 일화로, 50대 중반이 된 로버트는 심각한 늑막염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때 그는 간호사에게 바세린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발라달라고 요청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로버트는 곧 회복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그는 죽을 때까지 매일 바세린을 한 숟가락씩 먹었으며 1933년 1월 9일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마무리

이제 바세린이 화상이나 상처에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세린의 강력한 보습성분이 알려지게 되어 이제 바세린은 아주 다양한 형태의 보습 제품으로 시장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반응형
댓글
반응형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