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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이제 노골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노리고 있습니다. 2014년 크림반도 분쟁에서 정점을 찍은 이후 잠깐 소강상태를 보이던 양국간의 갈등은 작년(2021년) 말부터 다시 극대화 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는 미국과 EU등 서방국가의 도움을 구하고 있고, 그 사이 러시아는 대규모 침략 준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사실 실리적인 이유를 따지고 본다면 러시아가 이렇게까지 우크라이나에 집착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이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문제로 인해 서방세계의 견제를 받고 있고 실제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최악의 경우 서방세계 전체와 전쟁을 치뤄야 할지도 모릅니다. 누가봐도 러시아가 무리를 하고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관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통일

조금 이상하게 들릴수도 있겠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국이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합니다.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언젠가는 수복해야할 영토인 동시에 결코 잃어서는 안되는 러시아의 일부 입니다. 러시아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배경을 먼저 이해 해야 합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바로 882년 루스족이 세운 공국인 키예프 루스(Киевская Русь) 입니다. 이 나라의 수도는 우크라이나의 수도였던 키예프였고요. 이 나라는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서로 다른 국가로 분리되게 됩니다. 

 

그러던 1654년 러시아의 전신인 루스 차르국(Царство Русское)이 우크라이나 지역을 차지하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침공하였고, 협상 끝에 우크라이나의 중심을 지나는 드네프르(Днепр)강을 기준으로 동쪽 지역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러시아 측은 이 사건을 '러시아와의 우크라이나 통일(Воссоединение Украины с Россией)'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이 때를 기준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하나의 국가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를 모두 획득한 것은 아니긴 하지만요. 또 반대로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때를 기점으로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당시의 주민들은 루스 차르국이 들어오면 그들이 그동안 겪었던 폭정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루스 차르국은 오히려 우크라이나어와 자체 문화를 탄압하고,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험한 강제 노역에 투입하는등 박해를 이어갔습니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가 움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루스 차르국은 러시아 제국(Российская Империя)으로 명패를 바꿔 달았고, 다수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더 나은 학업과 직장을 위해 러시아 지역(특히 시베리아 정착촌)으로 떠나갔습니다. 반대로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로 떠나는 러시아인들도 많이 존재했습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드디어 1917년, 10월 혁명이 발생하고 러시아 제국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우크라이나 지역은 다시 독립했고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볼셰비키의 리더인 블라디미르 레닌은 우크라이나 수복을 원했고 또다른 핵심 인물이자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 이었던 레프 트로츠키도 같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결국 소비에트와 폴란드간의 전쟁 끝에 우크라이나 영토는 다시 절반씩 찢어져서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에 소비에트 우크라이나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1922년 12월 30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РСФС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УССР),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БССР), 자캅카스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ЗСФСР) 4개국이 연방 수립 조약을 체결하며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이 역사에 등장합니다.

 

결국 소련 성립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다시 하나가 된 셈입니다. 비록 스탈린이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를 수탈한 덕에 우크라이나인들의 반러 감정만 더 강해졋다고는 해도 우크라이는 한동안 소련의 일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수많은 러시아 인들이 우크라이나에 정착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소련은 우크라이나의 반러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러시아 공화국에 속해 있던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 영토로 이양해 버립니다. 이는 당시 최고 지도자였던 니키타 흐루쇼프가 어린시절 우크라이나에서 자란 영향이기도 했습니다. 이 당시로서는 그저 소련 연방 아래 지역의 단순한 행정구역 변경에 불과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독립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등장하고, 그는 냉전 종식과 더불어 개혁, 개방 정책을 펼치며 소련의 민주화를 도모합니다. 소련의 공산당 일당 독재가 폐지되고 다당제 기반의 이원집정부제와 입법부의 직선제, 입법부를 통한 대통령 간선제 등의 제도가 도입되며 다양한 개혁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렇게 되자 소련이라는 이름으로 메여 있던 공화국들의 독립 요구가 거세어 졌습니다. 고르바초프는 연방의 존속을 추구했지만 1991년 3월 17일 실시된 소련 존속에 관한 전연방 국민 투표에서 발트 3국과 조지아, 몰도바, 아르메니아 등 6개 국가가 독립하기로 결정이 됩니다. 우크라이나는 친러 성향 동부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표 덕분에 연방에 잔류하게 됩니다.

 

그렇게 신연방의 조약 체결 준비가 이루어지던 1991년 8월 쿠데타가 발생하게 됩니다. 주동자는 공산당 보수파들이었고 이들을 진압하고 실권을 잡은 사람이 바로 분리주의자였던 보리스 옐친입니다. 그 덕분에 잔류 결정이 났던 공화국들도 분리주의파가 힘을 얻게 되고 빠른 속도로 연방의 해체가 진행됩니다.

 

결국 그해 크리스마스, 공화국들의 완전한 독립은 확정되었고, 이날 저녁 고르바초프가 소련 대통령직에서 사임하면서 소련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이 때 각 공화국들은 소련 시절 정해진 국경선을 새로운 국경선으로 삼았고 그 덕분에 크림 반도는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됩니다.

푸틴의 등장과 크림 반도 점령

당연하게도 연방의 해체 직후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특히 크림반도에는 소련 해군의 주요 함대인 흑해 함대가 위치해 있었는데,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 반도에 러시아군이 주둔할 수 있는가 여부를 두고 두 나라의 대립이 이어졌습니다. 그런 와중에 대다수가 러시아계 정착민인 크림반도 지방 정부는 다시 러시아와의 합병을 원하는 등 큰 혼란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소유를 인정하는 대신 흑해 함대가 주둔할 수 있게 되었고,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는 크림 반도의 자치 공화국 성립을 인정하며 또 다른 분리 사태를 방어했습니다. 이후 우크라이나 정치는 친러와 친서방 정당간의 힘겨루기로 이어졌고 이 균형은 그럭저럭 잘 이루어 지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Владимир Путин)이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에 취임하게 됩니다. 푸틴의 집권 전략은 러시아인들에게 강하게 남아있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소련의 유산과 역사적인 성과들을 복원하는 정책들을 시행하게 됩니다. 그 중에는 과거 소련이 지배했던 영토도 포함되어 있었죠.

 

2013년 우크라이나에서는 친서방 시민들이 대규모로 시위를 일으키며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 정권을 몰아냈고 우크라이나 정치권에서는 반러, 친서방 기류가 강하게 형성 됩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친러 정권이 날아가 버리자 조만간 흑해 함대의 크림반도 주둔이 힘들어 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흑해에서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죠.

 

결국 2014년 크림 반도 내 친러 세력을 부추겨 독립 투표를 진행시키는 동시에, 러시아군이 크림 반도를 점령하게 됩니다. 이어진 독립 투표는 압도적인 찬성표로 하루만에 러시아의 영토로 편입되게 되죠.

 

바로 이 때를 시작으로 우크라이나 내전이 지금(2021년)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향해 드러내는 집착에 가까운 모습은 역사적,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쉽게 봉합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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