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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일어서지 않는다면, 내일은 일어설 수 없을 것이다. - 해바라기 운동 구호

 

2014년 3월 18일 대만의 대학생들과 시민운동가등 약 300여명이 인원이 대만의 국회인 입법원을 점거했습니다. 이들은 당시 국만당의 총통이었던 마잉주 총통과 그 정부 밀어붙인 중국과의 서비스 무역협정을 반대하며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이들은 중국과의 서비스 무역협정이 국민들의 뜻과 반대된다고 주장하며 23일간 시위를 지속했고 이는 대만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해당 협정에 반대하는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협정이 발효 될 경우 대만은 노동시장을 중국에 개방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중국의 저렴한 노동자들이 대만으로 유입되고 그만큼 대만 국민들의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 뻔했습니다. 많은 국민들은 이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여론은 시위대의 편이었습니다.

 

또한 마잉주 총동의 국민당 정부가 2008년 집권한 이후 보인 친중 행보들이 대만의 중국에 대한 종속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이 시위를 통해 극렬하게 표출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마잉주 총통이 이끄는 국민당 정부는 힘을 잃어갔고 결국 국민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양안 서비스 무역협정 발효는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2014년 하반기에는 우산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홍콩의 반중국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면서 대만의 미래가 홍콩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국민당의 몰락을 가속화 시켰고 전국 지방선거에서 민진당 등 야권이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이후 2016년에는 결국 민진당이 정권교체를 이뤄 냅니다.

 

마잉주 총통의 국민당은 2010년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맺었고, 그해 대만 경제성장률은 10.6%로 급등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대만 기업들 상당수가 중국으로 빠져나가며 대만의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고, 반대로 중화머니가 흘러들어와 타이베이, 타이중 같은 대도시의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켜 버렀습니다. 

 

청년 실업 문제와 부동산 문제는 결국 젊은 세대를 폭발 시켰고, 이 분노에 불을 지핀것이 바로 양안 서비스 협정 반대를 외치던 해바라기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마잉주 총통은 대선을 두달 앞둔 2015년 11월 7일, 시진핑과 싱가포르에서 회담을 가지며 지지세를 끌어올리려고 하였으나 때마침 터진 쯔위사태의 영향력이 더 크게 작용하며 대선 정국에 전혀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할머니는 대만 원주민, 할아버지는 청나라때 대만으로 이주 해 온 객가 출신 본성인인 차이잉원과 민진당이 정권을 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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