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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옛날의 바나나

바나나의 고향은 동남아시아입니다. 바나나는 1500년대 초반에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했는데 노예들이 사탕수수 농장 옆에서 함께 재배했습니다.

 

당시 바나나의 모습은 우리가 오늘날 슈퍼마켓에서 사 먹는 바나나와는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종류의 바나나를 재배하고 있었습니다.

 

1800년대가 되면서 바나나는 미국 전역에서 인기를 얻게 됩니다. 바나나는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고 일년내내 재배가 가능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상품성이 있는 과일이었습니다. 바나나 사업은 점점 켜졌고 미국의 과일 회사들은 독자적으로 바나나를 재배하고자 했죠. 

 

바나나를 재배할 토지 이용권을 위해서 과일 회사들은 중앙 아메리카의 정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고 매수했습니다. 때로는 권력을 쥔 협력자를 확보하기 위해 쿠데타에 협조하기까지 했죠.

파나마 병

1930년대가 되자 유나이티드 프룻이라는 하나의 회사가 엄청난 기세로 성장합니다. 이 회사는 한때 과테말라 경작지의 40%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죠. 그들은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과테말라, 온두라스, 그리고 파나마의 열대우림을 개간해 대규모 농장과 철로, 항구와 주택 노동자를 위한 마을을 지었습니다.

 

바나나 농장은 비교적 보수를 많이 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바나나 농장에서 일을 하기위해 몰려들었습니다. 중앙 아메리카에 그들이 소유한 모든 땅에서 유나이티드 프룻 농장은 오로지 그로 미셸 바나나만 재배했습니다. 당시 가장 맛있는 바나나 품종이었죠.

 

단일 품종으로 빽빽하게 심어진 바나나 농장에는 당연히 생물 다양성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환경은 질병에 아주 취약하죠. 게다가 이 농장들을 연결하는 사회 기반시설들이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질병을 빠르게 전달하기 너무나 좋은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바나나 농장

1910년 우려하던 일이 터졌습니다. 곰팡이 하나가 그로 미셸 바나나 농장을 무너뜨린 것을 시작으로, 중앙 아메리카 전역의 바나나 농장을 초토화 시켜 버렸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더 큰 수익과 효율성을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 이 전염병을 더 쉽고 빠르게 퍼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파나마 병' 이라고 알려진 이 바나나 질병 덕분에 바나나 농장 업계는 날벼락을 맞았고 수천명의 농부들은 실직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회사들은 질병이 퍼지지 않은 새로운 땅에 농장을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열대우림 같은 곳이죠.

캐번디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중앙 아메리카에서 유나이티드 프룻과 동업했던 독재자들은 대부분 실각했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정부들은 유나이티드 프룻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죠. 게다가 수천명 이상 직원들이 파업을 벌이며 새로운 노동조합 설립을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파나마 병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정치적, 경제적 운영 비용을 고려해 유나이티드 프룻은 결국 그로 미셸 바나나에서 파나마 병에 저항력이 있는 캐번디시로 대체했습니다.

 

오늘날, 바나나는 중앙 아메리카에서 더 이상 경제적으로 중요하지 않으며 유나이티드 프룻 컴퍼니는 라틴 아메리카 정치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캐번디시 품종 바나나 역시 과거 파나마병이 유행할 때와 유사한 재배 환경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캐번디시 품종은 파나마 병에는 저항력이 있지만 모든 전염병에 다 강한 것은 아닙니다. 또 언제 비슷한 재앙이 일어나게 될 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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